게임테크랩 수료 후에 거의 한 달간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쏟았다. 정글에 있는 동안은 워낙 일정이 바쁘다 보니 ‘정리는 수료 후에 한 번에 하자’하는 생각으로 자료만 남기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 수료 후에 오랜 시간을 정리 작업에만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정리 작업 자체는 나름 마음에 들게 된 것 같다. 엔진 제작 실습과 게임잼을 정리한 저장소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보통 후기 글은 잘 쓰지 않는 편이지만, 정글 자료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여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늦게나마 후기 글을 남긴다. 인터넷에서 크래프톤 정글 관련 후기들을 찾아보면 대부분 입학 관련 후기가 많은데, 이번 후기는 입학에 크게 도움 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지난 반년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한 회고다.


작년 말, 졸업을 앞둔 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처음 게임 개발자라는 꿈을 가진 이후로 인생 계획서에 업데이트가 없다 보니 그저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컴공 졸업하면 그다음 일은 세상이 알아서 정해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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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스톤 디자인을 마치고 대학 생활을 뒤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대학에서 공부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학부 공부에만 몰두하여 정작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은 거의 못 해보고 너무 이르게 졸업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인생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살아온 삶, 현재의 내 삶을 글로 정리하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았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크래프톤 정글이다. 이전에 학교에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웹 / AI 부트캠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었다. AI 챗봇이 설명해 준 바로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게임테크랩 2기가 진행 중이고, 3기가 예년 일정상 곧 모집될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처럼 느껴졌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면서, 졸업 이후의 삶을 시작하는 좋은 출발점으로 느껴졌다. 플랜 B도 세우지 않고 정글 입학에만 절박하게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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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설명회는 서울 강남의 SETEC에서 열렸다. 부산이라 거리도 먼데다, 온라인으로도 참가할 수 있었지만 ‘이 일 하나만 보고 있는데 이 정도 노력도 못 하겠나’하는 생각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당일치기로 왕복했다. 모집 설명회가 열린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하필 그날 밤 야간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아침에 서울로 올라가 모집 설명회를 듣고 부산까지 급하게 내려와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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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면접이었다. 정글 입학 관련 정보가 워낙에 부족한 데다, 각종 후기 글도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두루뭉술한 설명만 있다 보니 면접 준비가 어려웠다.

AI 챗봇에 예상 문제 만들어달라는 방식으로 기본기 준비를 했지만, 실제 면접에 들어가 보니 경험해 본 적 없던 면접 방식에, 수학과 물리 기초 문제들이 나오니 쉬운 문제도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면접이 끝나고도 그냥 ‘망했다’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어떻게 면접을 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하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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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알아주신 것인지 다행히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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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 당일은 날씨가 좋았다. 경북 청도에서 경기 용인까지 짐을 옮겨야 하다 보니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입소 첫날부터 일정이 바쁘게 돌아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도 했었는데, 대부분 이미 대학을 졸업하셨거나 고학년인 동년배분들이라 친해지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이를 먹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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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 첫날부터 바로 게임잼이 시작된다. 들어오자마자 의욕이 충분할 때 바로 개발에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입소 첫 주 프로그램은 원근 투영 없이 바로 NDC 공간을 보여주면서 움직임이나 충돌을 모두 xy 평면에서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 모델 로드 없이 구현할 수 있는, 기본 도형을 활용한 2D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사전 학습 때 공 물리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면서 떠올렸던 수박게임(Aladdin X, 2021)을 레퍼런스 삼아, 과일을 떨어뜨려 같은 종류끼리 합치며 점수를 쌓는 퍼즐 게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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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밤을 새우며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캠퍼스를 자주 돌아다녔다. 캠퍼스가 굉장히 자연 친화적이라 산책하면서 휴식하기에는 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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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무 자연 친화적이라 가끔 마주치는 불청객들은 감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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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이런저런 프로젝트는 많이 진행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배운 기술들을 각자 나눠 맡아 진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팀원들 다 같이 설계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새롭게 느껴졌다. 프레임워크 없이 main 함수 하나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바닥부터 새 구조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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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이벤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구현이 꽤 힘든 주차는 마지막 발표날 저녁에 회식도 했다. 가끔 열리는 이런 이벤트들이 힘든 일정을 버티게 해주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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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식당에서 식사 후 참여할 수 있는 PUBG 관련 이벤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2등 상으로 받은 길리슈트 입은 라이언 인형이다. 이 친구는 아직 내 책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