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제작 실습 주차가 끝난 뒤에는 정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에픽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내용은 과정마다 다른데, 게임테크랩은 언리얼 엔진 플러그인을 제작하여 FAB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0.jpg

엔진 프로젝트도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두 달이라는 비교적 넉넉한 기간이 주어짐에도 에픽 프로젝트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상징성이 있는 큰 프로젝트다 보니 팀원들 모두 나름의 욕심이 있었고, 기획과 설계에서 여기저기 의견 충돌이 났다. 토론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1.png

우리 팀은 특히나 무리수를 잘 두는, 코치님의 요주의(?) 팀이었는데, 어떻게든 플러그인을 완성하기 위해 갖가지 고생은 다 했다. 프로젝트 구상 초기 팀 내의 주된 기류는 ‘망해도 좋으니 이상한 걸 만들어보자!‘였던 것 같은데, 프로젝트가 점점 진행되면서 그렇다고 너무 막 기획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도 참신한 아이디어는 이런 시도 중에 하나 얻어걸리는 것 아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출시한 PlanetX.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존 레벨을 궤도에서 진입할 수 있는 행성으로 바꾸는 Orbit-to-Ground 툴킷이다. 우주 스케일의 게임을 개발할 때 행성을 다루는 도구는 대개 지형을 새로 생성하는 쪽에 초점을 두는데, 실제 개발에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은 사람이 직접 다듬는 지상 레벨임에도 이걸 버리고 개발을 생성형 지형으로 옮기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PlanetX는 원래 레벨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도록 콜리전, 액터, GameMode 등을 그대로 두고, 행성 좌표, 착륙 트랜스폼, 양방향 전환 등을 그 위에 한 층 덧씌우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기존 에셋을 살려 도입 비용을 낮추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물론 현실적인 구현의 어려움이 컸다. 기존 에셋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인 플러그인임에도, 기존 에셋을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에셋을 PlanetX에 맞는 형태로 읽어들일 필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메모리와 처리 시간이 소요되었다. 최대한 최적화를 해서 출시하긴 했지만, 최근 사용되는 고품질 에셋들의 용량이 워낙 크다 보니 에픽 게임즈의 데모 씬에서마저 이 플러그인을 활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시스템 사양이 굉장히 높다.

과정에서 제공해 주신 PC의 사양이 일반적인 게임 개발에는 부족함 없는 사양이기는 하지만, PlanetX를 원활하게 동작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데모 영상마저도 이착륙 장면에서 프레임이 심하게 떨어지는 구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우리 최선의 노력이 담긴 눈물의 결과라고 생각하자…

2-0.jpg 2-1.jpg

3.jpg

공개 마켓플레이스에 출시를 한 경험도 처음이었거니와, 출시한 제품을 실제 현직자분들 앞에 선보여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발표 자료와 데모 영상, 포스터와 간단한 데모 프로그램을 준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팀장과 팀원 모두 이 시기를 보내면서 진이 다 빠졌다.

4-0.jpg 4-1.png

최종 발표회는 예상보다 더 많은 분이 참석해주셨다. 정글을 거쳐 가신 선배님들과 현직자분들이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셨다.

최종 발표회까지 마치고 정글을 퇴소하는 시간까지, 드디어 끝났다는 후련함과 조금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다. 동시에 정글을 나가서 이제 뭘 하고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최종 발표회를 마친 후 회식 자리에서 코치님이 해주신 조언은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라’였다. 옛날 노래가 차트를 역주행하는 것은 JYP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아무도 미래를 모르는 만큼 그 누구의 말에도 정답은 없는 법이다. 계속 고민만 하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찌 보면 식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대도지간(大道至簡), 가장 큰 도리는 아주 간단한 법이다.

5.jpg

퇴소 이틀 전, 하늘에는 살면서 처음 보는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6-0.jpg 6-1.jpg

퇴소 날, 대부분의 훈련생이 떠난 뒤 한적한 캠퍼스를 산책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해진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 시원섭섭했다.

교육장에서는 코치님께서 혼자 장비들을 정리하고 계셨는데, 뭔가 마주치면 어색할 것 같아서 몰래 빠져나왔다. 인사라도 드리고 나올 걸 싶다.

7.jpg

몰입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정글인 만큼, 혼자서라면 한참이 걸려도 끝내지 못했을 과정을 게임테크랩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게임테크랩의 진짜 장점은 사람들이었다. 나랑 같은 분야의,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래 사람들을 만나 6개월간 함께 지내며 공부할 기회가 살면서 몇 번이나 있겠는가? 공부하며 얻은 지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이 여기에서 남은 가장 큰 결실이었다.

8.jpg

그리고 퇴소하자마자 예비군 훈련 다녀왔다…


아무튼 올해 들어 지금까지는 이렇게 지냈다. 여전히 앞길은 막막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냥 담담하게 지내려고 한다.

시지프의 벌은 그대로지만, 그 벌을 바라보는 태도는 온전히 시지프의 것이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행복은 ‘다 잘될 거야’ 같은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희망 없이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기쁨이다.

9.jpg

마지막은 얼마 전 카페에서 만난 냥이.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이라 이름이 ‘말차’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말자’였다.